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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 김훈

by _마디 2017. 7. 5.

마동수는 죽기 전 6개월 동안 혼수상태에서 숨을 헐떡이면서 섬망의 헛소리를 지껄였다. 가끔씩 정신이 돌아 올 때 마동수는 실눈을 뜨고 벽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흐린날의 저녁 무렵과 같았다. 시간은 마동수의 생명과는 무관하게, 먼 변방으로 몰려가고 있었는데, 마동수의 육신은 그 시간의 썰물에 실려서 수평선 너머로 끌려가고 있었다.
마동수의 마지막 의식은 죽음이 이끄는 썰물에 실려서 먼 수평선 너머로 흘러갔다가 다시 밀물에 얹혀서 이승의 해안으로 떠밀려 오기를 세 번 거듭했다. 숨이 끊어지기 전에 혼백이 먼저 육신을 떠나서 멀어졌고 다시 몸속으로 돌아왔다.
마동수의 마지막 의식은 시간의 파도에 실려서, 삶과 죽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가 세 번째 썰물에 실려 저편으로 아주 건너갔고, 다리가 오그라졌다. -10



수송선 갑판에서 피난민들은 폭격 맞은 흥남부두의 불길을 바라보았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가 배에서 배로 이어지면서 바다 위로 흘러갔다. 아이고는 저마다의 몸 안에 갇혀 있던 폭발물처럼 터져 나왔다. 선단은 남항했고, 아이곤해풍에 실려 북으로 흘렀다. -100







이것이 소설가의 문장이구나.
감탄을 넘어 감동이었고 충격이었다.

나도 지독하게 인상깊은 한 문장을 써내고 싶다는 욕망이 일었다.

소설은 정적이었고 문장은 날카로웠다.
모든 것을 담담하게 서술하면서도 있는 그대로 빠뜨리는 일 없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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