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잡

결혼 축하드립니다. 정육점 사장님

_마디 2016. 12. 16.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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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의 일이다.

이제와서야 글을 쓰지만 그때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


친했던 형과의 일이다.

그 형은 정육점 사장이었다. 당시 20대 중반의 어린나이로 힘겹게 사업을 시작한 형은 나름대로의 건설적인 미래계획과 꿈을 가지고 사는 멋진 형이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나는 그 형과 자주 만나는 사이였다. 심심할 때면 만나서 인생 이야기를 안주 삼아 술 한 잔씩 기울이곤 했다. 나를 잘 챙겨주기도 하고 의지가 되는 형이었고, 그 형의 둘도 없다는 친구와도 함께 만나 같이 술을 마시기도 했었다. 


한 날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00아 알바할 생각 없니?" 

 정육점에 일손이 모잘라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친한 형의 부탁이기도 하고 2일만 도와주면 된다길래 용돈도 받을 겸 가서 손을 거들어 주었다.

 기분 좋게 2일치 알바비도 받고 또 형과 밥도 먹고 정육점이라는 곳에서 일도 해보는 경험이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고 비슷한 부탁을 받았다. 주말에 일이 급한 일이 생겼는데, 대형마트 안에 딸려있는 정육점이라 마음대로 문을 닫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급하게 사람을 구할 수가 없는데 이틀이라도 해본 내가 이번 주말에 가게를 봐줄 수 없겠냐고 한다.

주말 2일을 그대로 상납해야되는 게 내키진 않았지만 그래도 일을 해주기로 했다. 지난번 일도 나름 괜찮았고 좋아하는 형의 부탁인데 뭐...


그런데 2일 내내 혼자서 가게를 봐야했기에 일을 배워야했다.

평일 공강날 형의 가게를 찾아갔다. 고기 손질하는 법, 국거리 고기 구별하는 방법 등... 정육점의 모든 일을 단 하루만에 배웠다. 심지어 왜 인지 모르게 형네 가게는 생선도  취급을 했기에 생선 손질까지 배워야 했다. 

그렇게 주말 2일 동안 정육점을 하다보니까 이제는 내가 정육점을 차려도 될만큼 베테랑이 됐다. 어쩌면 나의 재능이 이걸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몇 일 후, 형이 연락이 없어 내가 먼저 연락을 했다.


"형, 주말에 했던 알바비 0000계좌로 편하실 때 보내주시고 카톡하나만 남겨주세요."

평일에 하루 나가서 일 배웠던 건 수당에 치지도 않았다. 


"아 그래. 내일 바로 보내줄게. 주말에 일 봐줘서 고맙다.


다음날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왔다.


 "오늘 위생청에서 찾아 왔는데, 주말에 너가 일하는 동안에 고기손질하다가 손님한테 팔았던 고기에 불순물이 섞여 들어갔다더라. 그 고객이 빡쳐서 위생청에 컴플레인을 걸었어. 가게 위생 조사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나참,, 벌금이 400만원이라지 뭐냐. 알바비는 내가 지금 상황 정리해보고 다시 연락줄게."

많이 당황스러웠다.


형의 간곡한 부탁이었고, 형도 내가 미숙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이런 일은 당연히 사장이 해결해야하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나의 실수였고, 정말 친한 형이지 않은가...


미안함과 당혹스러움이 섞여 흘러나왔다.

 "이런건 당연히 사장인 내가 해결해야하는 부분이고, 너한테 돈을 보태달라거나 그런건 아닌데, 내가 당장 400이 없어서 대출을 좀 받아야 될꺼같아. 알바비는 정리되면 다시 연락줄게."


 "아, 네 형. 알바비는 생각 안하셔도 돼요. 죄송합니다."


/


형에게 연락이 왔다.

대출을 받았는데, 1,2 금융권에서는 대출이 안되서 3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았다고 한다. 이자율에 너무 세서 지금하는 일로는 이자 갚기도 빠듯하다, 원금을 갚을려면 주말에 다른 일을 해야될 꺼 같은데, 정말 미안하지만 빚을 갚는 동안만 주말에 일을 해줄 수 없겠느냐.


많이 당황스러웠지만, 나에게도 잘못이 있었고, 이런 일로 친한 형과의 의리를 져버리고 싶지 않았다. 


"이 일은 크게 만들지 않고 내 선에서 해결하고 싶으니까 부모님한테는 말씀드리지는 말고. 말하면 괜히 걱정하실테니까. 이번 주말부터 좀 부탁해."


"형 제가 지금 방학이라 집에 내려왔거든요. 그런데 부모님께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그렇게 일 하고싶지는 않고요.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이번 주말에 올라갈게요."


결국은 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말씀드렸고, 형과 아버지가 통화를 했다.


먼저, 아들 때문에 벌금이 그렇게 나온건 정말 미안하고, 그렇지만 4-5개월 내내 주말에 무급으로 일을 하는 건 너무 힘들다. 딱 이번주말까지만 일 도와주고 여기서 마무리 짓는걸로 하자.


이렇게 이야기가 끝났고, 그 주말에 형의 가게 일을 도왔다.


일이 끝난 일요일 저녁.

형이 간곡했다.

부모님이랑은 그렇게 말을 했어도, 아무리 계산을 해도 정말정말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부탁할 사람도 없고 다른 인력을 쓸 형편도 안되고 이자는 늘고...

진짜 이번 한 학기 학교다니는 동안만이라도 안되겠느냐고..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잘못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네 그러면 다음주에 방학 끝나고 내려오면 부모님한테는 말씀 안드리고 주말동안 일하는 걸로 할게요."


정말 고맙다. 너 밖에 없다 정말.




그렇게

나의 한 학기는 정육점 알바로 시작했다.

학기의 중간이 지날 무렵,

그러니까 정육점 일을 시작한지 2달이 조금 넘었을 무렵이다.


주말마다 정육점으로 출근을 하다보니 대형마트 책임자분과도 친분이 생겼다.


"어우 사장님은 어디가고 학생이 출근을 해요"

"안녕하세요. 주말에는 제가 나와요 ㅎㅎ"


형이랑은 잘 지내는 사이처럼 보였고 나한테도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위생청에서 조사가 나왔을 정도면 정육점말고도 마트 전체를 조사당해서 불편했을 거고, 마트 이미지에도 타격이 있었을텐데 그런데도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시다니.. 참 착하신분 같았다.


라는 생각과 함께 얼마전 형과함께한 술자리가 떠올랐다.

형이 그날따라 과음을 했다. 기분 좋게 취해서 자기집 고양이 자랑을 늘어놓았다.


"야 형이 고양이 진짜 아끼는 거 너 알지. 고양이 외로울까봐 한 마리 더 샀다. 그리고 얘네들 때문에 들인 돈만해도....."

고양이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돈을 썼다는 형의 자랑.


..빚에 쪼들린다는 사람이...?

그래도 그만큼 고양이를 좋아하는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형을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하고 싶었다. 괜한 의심이 싹트기전에 잘라버려야지.


마트 책임자님을 찾아갔다.

혹시 최근에 위생청에서 저희 정육점때문에 조사가 나온적이 있지 않느냐고.

그때 상황좀 설명 해주실 수 있겠느냐고 여쭸다.


아니? 그런적 없고, 만약 그랬다면 내가 모를 리가 없는데??


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래 윗선에까지 안올라오고 깔끔하게 마무리가 됐을 수도 있지. 어쨌든 형네 정육점만 벌금을 내면 되는거니까.


/


이때까지 일을 하면서 가게에서 벌금고지서 내용이라든지 그 비슷한 영수증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위생청의 재확인 방문이나 전화도 단 한 번도 없었다. 얼마를 냈고 얼마가 남았다는 세금 영수증도 없었다.


다음 날 형에게 문자를 했다.


"형, 제가 형을 의심하거나 뭐 그런건 아니고요. 혹시 전에 벌금 받았다는 고지서 내용 좀 확인 할 수 있을까요? 나중에 되서 형이나 저나 깔끔하게 끝내야지 서로 좋을 꺼 같아서요. 확실히 해두는 게 좋잖아요."


"그래 확실히 하는게 좋지. 근데 너가 나를 의심하는 거 같아서 약간 서운하긴 하다. 그래도 너가 원하면 보여줘야지. 내가 지금 일하는 중이니까 집에가서 바로 보내줄게."


그날 저녁 

걸려온 형의 전화

대답은 이랬다.


"야 아무리 찾아봐도 고지서가 안보인다. 누가 버렸는지.. 없어졌다. 아니 그래도 나도 확실히 하는 게 좋고, 정 알고 싶으면 그 날 우리가게 찾아왔던 위생청 사람이랑 전화연결 해줄게. 미리 연락해서 상황설명 부탁해 놓으면 되지? 번호줄게 내일 연락해봐."


다음 날 저녁, 나는 형이 알려준 위생청 직원분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아 네, 저는 어디어디 위생청 000 000(이름 직분) 입니다, 상황 다 들었고요. 제가 조사하러 간거 맞고 벌금 400만원 나왔어요."


나는 더 자세하게 많은 것을 물어봤지만


"지금 저녁 7시에요. 이미 퇴근하고 집에 가족들이랑 있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두 분 때문에 이렇게 일얘기 하는거 좀 불편하네요."


아차 싶었다.


죄송하다고 사과를 드리고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다만 미심적었던 부분은 상대방의 목소리가 너무 어렸다는 점.

그 정도 직책에 가족이 있을 정도면 최소한 저런 목소리는 아닐꺼 같은데...


다음날 형에게 전화가 왔고, 위생청 사람이 나때문에 굉장히 불쾌했다고 한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엄청 예의바르게 행동했고 약간 불편하다고 했을 때 바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했는데 형한테 그렇게 말하는 건 말도 안되지. 서로 기분나쁘게 끊은 것도 아니고.


아 뭐,. 그사람이 예민한건지 이상한건지.. 그러더라고..


/


이때 쯤, 나는 이미 주위에 있는 모든 위생청에 연락을 해본상태였다. 

며칠부터 며칠사이에 어디에서 벌금 낸 내역이 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내가 이러이러한 상황이라서 그 내역이랑 정황이 꼭 필요하다. 라고 질문을 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모두 같았다.


"그런 기록 없고, 그런 일이 있어도 1차는 무조건 경고지 1차부터 벌금은 없다. 최고 영업정지 처분이 될 수도 있겠지만 벌금이 400만원까지 나오지는 않는다."


/

형에게 내가 아는 것들을 말했다.

형 내가 마트 사장님한테도 물어보고 여기 주변에 있는 위생청에 전부 전화 해봤는데,

최근에 벌금 물린 일이 없었다고 하더라. 무슨일 인지 정확하게 설명좀 해줘라.


문자를 보냈는데, 바로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정말 미안하다고 만나서 이야기 하자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더라.


"사실은 너가 알바했을 때 그런 일이 발생한게 아니고, 너 오기전에 위생점검이 있었는데 그 일 때문에 벌금을 내야 했었어. 그래서 빠듯하게 갚고있는데, 너 바쁘고 힘든거 알고있어서 부탁해도 안될꺼같아서 그렇게... 야 정말 미안하다. 내가 그럴려고 그런건 아닌데..."


너무 충격받았고 너무 실망했고 어이가 없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형이 저한테 그러실 수 있어요??" 라고 말했다.

그 뒤로는 어떤 말을 했었는지, 무슨 말을 들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배신감.

나를 호구로 봤다는 모멸감.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분노섞인 그런 감정들.


"형이 정말 사실대로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더라면 저 진짜 그냥 모르는 척하고 있지는 않았을 거예요.  (..)  앞으로 아는 척하지 말아주세요.  그냥 서로 연락 안하고 지냈으면 좋겠네요."

가까스로 이 비슷한 말을 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돈?

그동안 일했던 돈?

돈 이야기는 꺼내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 사람에게서 돈을 받아내고 싶지도 않았다.


이 사건을 끝으로 모든 것을 정리했다고 생각했다.


/


며칠만에 전화가 왔다.


연락안하기로 했잖아요. 왜 전화하셨어요.


정말 미안하다. 내 상황 봐서라도 이해를 좀 해줘라. 만나서 다시 사과하고 싶다. 꼭 한번 만나자.



만났더니 하는 말이


진짜 염치없는 거 아는데, 이 지역에서 너말고 내가 아는 사람이 누가 있냐...

정말 미안하고 내가 잘못했고 용서해줘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딱 한주만 더 부탁할게. 한 번만 더 가게 봐줄 수 없겠니.


내가 생각해도 난 마음이 약하다.

 


형은 나한테 큰 잘못을 했다.

화가 나고 다시는 보고 싶지도 않다.

그렇지만 내 감정을 빼고 객관적인 상황을 봤을 때,

이 형은 400이라는 빚이 있고 주말에 다른 일을 해야하며 3개월 가까이 내가 주말 일을 봐주고 있었고 내가 빠져버리면 당장 그 자리를 매꿀 수 없는게 사실이었다.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봤을 때, 상황이 너무 딱했다.

옛정까지 생각하자 연민이 생겼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거,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도와주고 끝내자.


 

미련하다고 욕해도 좋다.

나는 그냥 이런 사람이다.


 /


익숙해진 정육점 풍경

그래 딱 이틀이야.


그렇게 토요일 하루가 지났고,

마지막 날 일요일.




그동안 상황을 정리 해봤다.

나 때문에 벌금을 받은게 아니라는데

그렇다면 나와 통화를 했던 위생청 사람은 누구였을까?

다시 생각해봐도 목소리가 너무 어렸다.


핸드폰을 들어

지난 통화목록을 찾기 시작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번호가 있었고

페이스북에 검색을 해봤다.


함께 아는 친구에 형이 있었고

프로필 사진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봤다.

그 사람이었다.

형이랑 둘도 없이 친한 친구라던, 셋이서 술도 마시고 얘기도 했던 그 사람.



충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 날 따라 유난히도 카운터 옆 노트북 한 대가 눈에 띄었다.



바탕화면에 알집 파일이 잔뜩 있었다.

알집의 제목들은 날짜로 보이는 숫자들.

그 날짜들을 확인해 보니 모두 주말이었다. 이제까지 내가 출근했었던 그 날들.


분노와 불안감에 휩싸여 압축을 풀고 내용을 확인 해보니 사진들이 있었다.



당시 형은 만나는 여자가 있었고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 주말.


본인의 입으로는 빚을 갚기위해서 다른 일을 하러 다닌다던 그 날짜에


사진에는 여자친구와 함께 찍은 그 형의 모습


스쿠버 다이빙, 제주도, 바닷가를 배경으로.


/


마지막 날이 지났고, 이 형과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라고 단정 지었다.

마지막으로 형과 대화를 했다.



정말 고맙고 미안하고...


됐고. 


내가 말했다. 


"다시는 연락 안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제는 위생청 사람이라던 그 사람도 의심스러워요."


모르는척 했다.


"내가 정말 거짓말해서 할 말 없는데 너가 그거까지 안 믿어버리면... 좀 서운하다." 고 했던가.


마지막 끝말을 흐리며 아쉬워하는 목소리 톤과 그 모습에 진절머리가 났다.

'이새끼랑은 죽어서도 안봐야겠다.' 


/


얼마 후 그 사람은 결혼을 했고, 많은 친구들과 지인들이 축하를 하러갔다.

물론 나는 가지 않았고, 혹여나 동네에서 마주치더라도 눈빛조차 주지 않았다.


아마 아직도 그사람은 내가 속고 있는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회에서 매장시키고 싶지만, 갓 결혼한 사람이고, 그 사람 부모님과도 친분이 있고, 아내분과 그 부모님들을 생각해서 꾹 눌러 참고 있다는 것을 퍼트리지 않을 이 글에서나마 밝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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